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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30
벽돌로 쓰인 서촌의 역사: 체부동 생활문화센터
       

벽돌로 쓰인 서촌의 역사: 체부동 생활문화센터


박성진 편집장 | 사진 남궁선 | 자료제공 지요건축사사무소


서촌의 오래된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허름한 한옥들이 서로 등을 맞댄 채 모여 있는 체부동을 만나게 된다. 한옥들은 저마다 붉고 검은 벽돌로 옷을 고쳐 입고 골목의 새로운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는 이 한옥들 사이로 첨탑을 높다랗게 쭉 내밀며 야트막한 주변 풍경의 시각적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 교회라는 종교의 색채를 털어내고 공연장으로 변모한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를 만나러 갔다.

87년, 시간을 품은 붉은 벽돌

사실 이곳에 이런 교회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는 건축가나 서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옛 체부동 성결교회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몇 해 전부터 뜨기 시작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서 안쪽으로 골목을 하나 더 따고 들어가면 작고 허름한 한옥들에 둘러싸인, 저 혼자 불룩 솟아 있는 교회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미 인근엔 삼계탕부터 와인까지 국적과 기호를 달리하는 맛집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성결교회에 대한 이슈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만큼 오랜 이야기를 간직한 건물이 주변에 없다.
체부동 성결교회는 1931년 현 위치에 새 건물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매주 금요일마다 어린이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교회 유년학교의 시작이다. 일제강점기 성도 수가 200여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일제는 체부동 성결교회가 강한 재림사상을 보인다며 1943년 강제로 교회를 폐쇄하고 빵 공장으로 운영했다. 그러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교인들은 예배당을 회수한 뒤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건립 당시의 외형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일부 증개축도 흥미롭게 확인된다. 특히 벽돌쌓기의 방식이 달라지는 지점에서 이 건물의 증축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읽어갈 수 있다. 처음 지어질 때 이 교회는 같은 단에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이 번갈아 보이도록 쌓는 ‘프랑스식 쌓기’로 지어졌다. 그리고 해방 후 교회를 증축할 때는 영미권의 영향으로 한 단에는 긴 면만, 다른 단엔 짧은 면만 보이도록 하는 ‘영국식 쌓기’가 활용되었다. 주한 영국대사관저처럼 섬세한 조적 양식을 갖추고 있진 않지만 근대의 벽돌 건축물로서 그 시간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같으면서도 다른 벽돌 - 공간을 바꾸다
이번 프로젝트의 건축가 김세진(지요건축사사무소 소장)도 이 벽돌벽이 갖는 정감과 가치를 강조했다.리모델링의 출발에 있어 벽돌벽과 목조 트러스를 최대한 보존할 것을 원칙으로 세운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건물에서는 붉은 벽돌벽을 어떻게 남기고 드러낼 것인지의 측면에서 건축가의 의도와 개념을 읽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예배당으로 쓰였던 건물 안쪽에서 벽돌의 다양한 변주가 일어난다. 기능적으로 예배당을 공연장으로 바꾸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덧대야 하는 상황에서 건축가는 검은 전벽돌을 선택한다. 그리고 양쪽의 측벽에 음향설계를 반영해 톱니 모양으로 요철을 만들고, 또 후면에는 다공질 모양으로 비어쌓기를, 또 전면에는 내어쌓기로 요철을 만든다. 하나의 벽돌을 두고 조적의 방식, 표면의 형태 변화, 그리고 밀도감의 변주를 통해 공연장 하부 표면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이런 벽체 위로는 거친 목조 트러스와 외부의 붉은 벽돌벽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벽돌은 기능과 정서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원되고 차용되었고, 색은 다르지만 같은 구축의 언어를 통해 내부 공간에 변화와 일체감을 얻게 되었다. 이런 내부의 풍경은 서로 다른 시간들을 꿰어나간 하나의 콜라주와도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런 벽돌의 사용과 구법이 내부를 외부화하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공연장의 솔리드한 측벽은 실내 공간보다는 골목의 경험적 차원이 연장되어온 것이며, 앞뒤로 절개해 드러난 붉은 벽돌도 골목길의 정서를 안으로 끌고 들어온 건축적 장치이다. 또 후면의 다공질 벽 또한 빛의 연출을 전제로 주로 외부에서 등장하는 구법이다. 내부에 있어야 할 측벽의 창들이 모두 사라진 것도 그런 느낌을 가중한다. 새롭게 구성된 공연장은 실내의 느낌보다는 골목길 중간 빈 공간에 서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전면 무대 뒤쪽으로 열려 있는 넓은 창이 한옥의 처마와 외부 의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제로 현대적인 접문과 전통적인 들문을 통해 공간적으로 서로 관입・간섭하고 있다는 것도 외부화된 내부를 구성하는 축이다. 공연장은 건물 안쪽에 자리한 아주 내밀한 외부 중정과도 같다. 이 접문과 들문의 장치를 통해 근대의 벽돌은 후면의 한옥을 넘어 마당과도 서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벽돌을 어떻게 남기고 혹은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기존 예배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창의적 공간을 일으킨 것이다.

골목길에 서서

골목에서 건축가의 의도와 개입이 드러나는 것은 창과 문 정도이다. 이미 안에서 기능적 이유로 모든 창과 문을 막아버린 상황에서 사실 외벽의 창과 문은 박제된 기억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건축가는 창호 틀을 다시 목조로 복원하고, 배경을 흰색으로 처리해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열리지 않고, 소통을 이루지 않는 창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골목에 남아 있던 오랜 교회 건물의 이미지와 정서를 위해 지금의 창들이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건축가의 방어적인 접근보다는 적극적인 해석과 표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열리거나 보이지 않는 이 흰색 창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의 흰 눈자위처럼 퇴화된 기능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벽돌의 정서는 비단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래된 한옥들이 켜를 더 쌓아가면서 작은 벽돌들이 이 골목 양쪽에 어떤 식으로든 계속 덧붙여졌다. 체부동 일대에는 아직 비슷한 규모의 한옥들이 벽돌을 두르고 일단의 군락을 이루며 남아 있다. 하지만 음식문화거리로부터 밀려오는 인파와 상업의 논리를 이 일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남아 있는 한옥들 중 일부는 이미 벽돌의 물성 위로 덧칠해진 현란한 색채와 함께 트렌디한 상업적 이미지로 계속 바뀌어가는 중이다.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

이번 사례의 가치는 건축가의 창의적인 사고와 리모델링, 그 결과에만 있지 않다. 2014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던 건물을 서울시가 매입하는 과정과 이에 활용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옛 성결교회는 주민들이 떠나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교회와 교인들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교회 건물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울시에 먼저 매각을 제안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우수건축자산 1호가 탄생한 것이다. 관광객의 증가와 거주민의 감소, 그리고 상업시설의 주거지 침투가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우수건축자산으로 다시 탄생한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는 서촌의 공공성과 문화를 이어가려는 우리의 저항선인 셈이다.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는 서울시민 오케스트라 모임을 위한 연습과 공연 공간으로 대관될 예정이다. 한옥에서는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모임, 강좌들이 열릴 것이다. 이번 매입과 전용으로 서촌의 중요한 풍경축 하나가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축을 중심으로 체부동 골목의 풍경과 문화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가길 바란다. 건축가와 골목을 둘러볼 때 들었던 한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쓴소리. “매일 취객들이 들어와 고성방가에, 오물을 쏟아놓고 가는 골목길을 뭐가 좋다고 둘러보는 거야?” 거주민들의 체념이 새로운 희망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기억은 실체 없이 떠도는 이미지가 아니다. 머릿속에 저장된 텍스트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럼 기억을 생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가장 분명한 실체는 무엇일까? 바로 장소이다. 그리고 공간이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소중히 다루고 남기려고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동의 기억과 사회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탄생한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라는 공간이 이 일대의 기억을 담는 소중한 그릇과 시간의 증표가 되길 바란다.


 
tag.  도시 , 공공장소 , 서울 , 서촌 , 한옥 , 벽돌
       
월간 SPACE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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