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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06 / 05
조병수_심플한 건물에 깃든 자연미
       

건축 월간지 <공간> 이 건축학과 교수들에게 설문을 돌려 뽑은 <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12인 >, 40~50대 중진 건축가편, 건축가 조병수씨를 소개한다.

 

모든 건축가들은 자신만의 어휘로 집을 짓는다. 건축가 조병수가 추구하는 건축은 굳이 비교하자면 막사발과 닮았다. 고려청자나 백자처럼 기교나 공예적 완성도는 없지만 담백한 실용의 미가 있다. 집으로 치면 시골 길가에 놓인 창고나 옛 건물 같다. 기능과 요구에 충실해서 모든 부재와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조병수는 여기에 ‘직설적이지만 세련된’ 감수성도 담는다. 절제된 형태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움이나 무심하게 만들어진 사발의 기품이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그의 건축을 두고 ‘거칢 속의 세련, 세련 속의 무심함’이라고 표현한다.

 
사진 - 헤이리 Three Box House, 2006, 사진_김용관

내 건축의 바탕은 소나기 내릴 때의 흙 냄새
그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의 한 상가건물 맨 위층이다. 밖에서 보면 주변에 흔한 근린시설이지만 옥상에 오르면 예상치 못한 공간을 만난다. 건물을 두 채로 나누고 빈 마당을 두었다. 건물 한 채는 2등분을 해서 다시 그 사이로 하늘을 볼 수 있는 가운데 뜰, 곧 중정(中庭)을 두었다. “비를 보고 눈을 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마당이 좋아요.”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조병수 씨는 마당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비를 바라본다. 그의 감수성은 이렇게 외기(外氣)와 맞닿거나 열린 공간에서 겪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어릴 적 28평 남짓한 개량한옥에서 자랐어요. 공간에 대한 기억보다 몸으로 겪은 생활 경험이 더 기억나요.” 한옥은 너무 추워 겨울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아침이면 방안의 자리끼 물에 살얼음이 얼 때도 있어요. 외국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말도 안돼!라고 놀랬죠. 영하의 방에서 잤다는 말이니까.(웃음)” 하지만 춥다는 게 불편함을 말하는 건 아니다. 공기는 차고 바닥은 따뜻해서, 몸만 적응하면 실내가 상쾌했다. 조병수 씨는 ‘값어치 있는 불편함’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 집과 동네는 낮은 담장 너머 길에서 떠드는 소리가 방 안까지 밀려오고 저녁이면 옆집 젓가락 소리가 동네 불빛과 함께 넘나들었다. “달빛이었던가, 가로등이었던가, 막 잠자리에 누웠을 때 창호지에 밀려드는 불빛, 나뭇잎 그림자,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던 미닫이문, 이런 기억이 강해요.” 빗소리와 햇살이 비치는 마당, 소나기 내릴 때의 흙 냄새. 외가의 너른 시골 마당에서는 주변의 모든 소리, 냄새, 볕,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릇이다.

 
사진 - 수곡리 ㅁ자집, 2004, 사진_김종오

 
사진 - 수곡리 ㅁ자집, 2004, 사진_황우섭

“주택과 사무실 같이 써도 마당 없으면 안되겠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은 공간의 가치를 배운 것이죠. 설계하면서는 단지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아파트에서든, 개인주택에서든, 자라면서 한번 만들어진 감성은 더 추가되지 않아요. 그만큼 어릴 적 기억은 소중하죠.” 한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게 바로 건축가의 몫이라는 말인 듯 하다. 이 총체적인 기억을 몸으로 겪은 건축가는 자연스레 마당 같은 외부 공간을 선호한다. “자연을 경험하면 차분해지고 정신적으로 맑아져요. 유기적인 자연을 마주하면 사람은 결국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인식하게 되죠.” 그가 도가 사상이나 고유섭 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4년 한국에서 이렇다 할 프로젝트도 없으면서 처음 자기 사무실을 무작정 낼 때, 돈이 부족해 주택과 스튜디오를 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조건은 하나였다. 외부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게 없으면 안 되겠더라구요. 아무래도 한옥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어쩌면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져 외기를 접할 수 없는 도심 상가 건물 틈에서 옥상 층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은 바람과 햇빛을 경험할 수 있는, 그가 찾아낸 도시의 틈새인 듯하다. 
 
사진 - 평창동'-자집', 1995, 사진_김용관
 
“모든 동물은 제 손으로 집을 지어요.”
 
건축가로서 그는 전통적인 장인과 닮았다. “모든 동물은 제 손으로 집을 지어요. 아주 중요한 사실이죠.” 그는 만들어내는 행위를 하기 위해 건축을 택했다. “어릴 적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꼭 건축을 떠올린 건 아니었지만 막연히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직업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지남철, 찰흙, 커다란 나무 기둥 같은 물건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텍토닉’이 아니었던가 해요. 테크니컬이 주는 아름다움이죠.”

지금도 그의 사무실 곳곳에는 막 철거된 한옥에서 가져온 기둥이나 문, 커다란 석곽이나 쇳덩어리들이 놓여 있다. 그의 수집품은 고가구 가게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재료 자체가 지닌 솔직한 물성(物性)에 더 관심이 많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도예하던 친구를 따라 벽제 가마터를 찾아가 도예를 배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흙을 빚으며 그 성질을 배웠어요.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내려왔는데, 막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사진과 도면, 모형을 선보인 전시를 보게 되었죠.” 그는 그 길로 건축을 공부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진 - 배재대학교 예술대학, 2002, 사진_김종오

마크 트웨인의 목소리를 따라 미국 서부로 가다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국 서부의 작은 대학, 몬태나 주립대였다. 이유는 엉뚱하게도 마크 트웨인 때문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배경인 미시시피강 상류, 미주리강이 있는 서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고등학교 때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죠. 딱히 종교는 없었고 답이 될만한 철학 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헌책방에서 마크 트웨인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봤어요. 상당히 냉소적이라 어린 마음에도 이성과 감성에 대한 큰 의문을 남겼죠.” 마음 속에 각인된 소설가와의 인연은 젊은 동양인의 발길을 미국 서부의 낯선 대학으로 이끌었다. 몬태나에서의 생활은 건축가로서 그의 관심을 보다 명확하게 해주었다. 그 시기 몬태나에서 경험한 농업이나 산업건물에 대한 인상은 지금 그가 만드는 건축과 상통한다. “농가나 창고는 농부들의 마음을 보여주지요. 근면성실함이 배어 나오는 건물이죠. 실용적이고 솔직하고 소박함, 그런 멋이 있어요.”

이곳에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 밥 싱어를 만났다. 몬태나 대학 건축학과 학장이었다. 그가 한 졸업 축사는 아직 잊혀지지 않는 당부였다. “세상에 발 뻗고 잘 곳이 없거나 열악한 환경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건축가, 책임 있는 건축가가 돼 달라”는 축사였다. “몬태나 대학에서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배웠다면 하버드 대학에서는 ‘건축이란 건물을 만드는 것’임을 배웠어요. 물성이나 재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죠.” 라파엘 모네오가 그의 또 다른 스승이었다.

이론이나 연구보다 ‘실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이였다. 그래서 조병수의 건축은 차가운 노출 콘크리트에 송판 무늬를 넣거나 합판 미송 양철지붕 같은 재료를 거칠게 사용하면서도, 디테일에서는 이를 합리적으로 연결해 구조의 자발성을 드러낸다.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물성과 직설적인 재료의 사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규격품으로 생산된 산업 재료를 쓰는데, 여기에는 그 지역의 재료로 그 지역의 건축방식을 따른다는 건축가의 고집이 담겨있다. 흥미로운 것은 건축가의 이 까다로운 요구를 담은 디테일을 바로 그의 동생이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동생 조영묵 씨 역시 형과 함께 만드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못하고 시공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프로젝트들의 단순한 형태가 완성도 높게 실현될 수 있었던 건 고민을 함께 해온 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 - 몬태나 지역의 산업시설 풍경
 
“소설가 이외수 씨의 집을 지었더니, ‘벙커’라고 부르더라고요.”
그의 건축은 박스(box)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정방형의 박스는 그의 관심이 외형에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단순한 박스지만 주변과 연계가 중요해요. 하늘과 땅과 주변 자연과 어울리게 하는 거죠.” 박스라는 절제된 형태는 덩어리라는 물성을 보여준다. 주변의 흙 하늘 공기 햇빛 같은 자연의 유기적인 성격을 경험하는 배경을 만든다. “간결한 표현이 더 강렬해요. 그래서 저는 음악도 심포니는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웃음)” 상자에서 출발하는 단순화 작업을 통해 그는 건축적인 원형을 찾아간다. 이는 미학적인 절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소박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몬태나의 농업, 산업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시도다. 텅  빈 사과 상자처럼 실용적이고 솔직한 재질에는 순수함이 있다. 그는 거기 감동하고 그 효용성과 경제적 가치를 주목한다. 덧붙여 건축가 조병수는 그 사이를 흐르는 빛살과 바람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간결함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강원도 화천에 지은 이외수 씨의 주택 겸 집필실을 보고 주민들이 한동안 ‘벙커’라고 불렀어요. 어떻게 다 짓지도 않은 건물에서 사느냐고요. 이외수 씨를 안쓰러워 했대요.(웃음) 이외수 씨 부부는 안목이 세련됐고, 감각도 화려했어요. 제 의도를 잘 이해해주었죠.”  

 
사진 - 감성마을 이외수 주택 및 집필식, 2006, 사진_김용관
 
 
사진 - 몽인아트센터, 2007, 사진_김용관

“골조 섰을 때 가장 큰 보람이에요. 그리고 어이쿠 저 실수 어떻게 감추나 하죠.”
"막 골조가 지어져 공간이 실체화됐을 때 건축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물론 실수나 잘못된 게 가장 먼저 보여요. 어이쿠 저걸 어떻게 감추나.(웃음)" 아직 우리나라 건축 상황은 설계 비용에 대한 인식이 없는 데다 한정된 예산과 싸운다. 그래서 건축가는 해결할 일이 많다. “한정된 예산으로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 하죠. 완벽하게 고정된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형성되어 가는 건물을 만든다는 생각도 중요해요. 건물을 지으면서 거기서 살아갈 사람들과 상의해갈 때의 즐거움도 있어요.” 

그에게는 한국의 주거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재료나 생활방식에서 우리에겐 고유의 좋은 전통이 있어요. 하지만 왜곡된 게 많아요.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건 잊고 있던 주거의 가치, 원형을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로서 조병수 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욕망에 대한 절제, 그리고 그 정제된 원형에서 나오는 추상적 아름다움, 단순하나 본질적인 공간이 지닌 경이로움에 대한 열망. 조병수의 건축은 한국적 감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한다. 절제된 형태와 모던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외부 공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후기 모더니즘의 추상성과 동양사상의 연계 속에 ‘유기성과 추상성’을 포용한다”고 평한다. 조병수씨는 말했다. “건축이 뭘까요? 자연과 인간의 범위를 한정하고, 엮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거기에 사람들이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을 더해줄 뿐이죠.”
 
 
 
사진 - 헤이리 카메라타 음악감상실, 2004, 사진_김종오 

 

글 임진영/ 월간 <공간> 기자
SPACE 임진영 기자는 성균관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건축역사연구실에서 한국 고건축을 공부했다. 현대 도시와 사회, 건축에 주목하고 있으며, 월간 <공간>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tag.  건축가 , 건축 , 이외수 , 건축인 , 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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