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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5 / 03
금지된 밀실 혹은 아트 플랫폼, 미디어 바 ‘압셍트(absinthe)’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린 오후, 도산공원을 걷고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 초록 벨벳 수트를 입은 흰 토끼 한 마리가 정물처럼 서 있었다. 흠, 꽤나 정교한 작품인걸. 지나치려는데 토끼의 분홍색 코가 움찔거렸다. 루비를 박아 놓은 듯한 빨간 눈을 두 번 깜빡이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요즘 설치작품은 정말 정교하단 말야. 토끼가 뛰어가다 말고 돌아보더니 이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앞 발을 까딱거렸다. 뛰는 건 귀찮은데. 할 수 없이 토끼를 따라 뛰었다. 몇 개의 골목을 돌아 한 건물의 동굴처럼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 새 토끼는 사라지고, 초록색 빛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미디어 바(Media Bar) ‘압셍트(Absinthe)’의 첫인상이 그랬다. 보틀 쉽(Bottle Ship)처럼, 동명의 술병 속에 갤러리와 바를 넣어 놓은 것 같았다. 잘 벼려진 칼로 단칼에 잘라낸 듯한 흰 벽면에 촘촘히 박힌 초록색 LED 조명 때문인데, 물 흐르듯 자유롭게 유영하는 불빛들이 마치 압셍트를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느 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없어 한층 압도적인 초록빛은 곧 금지된 술 압셍트를 의미하며, 미디어 바 압셍트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그런데 어쩌다 발음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술이 한 공간의 정체성을 설명하게 되었을까. ‘초록 요정’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 술은 금지된 재료인 ‘쓴쑥’을 함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잠정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 고흐, 툴루즈 로트렉, 헤밍웨이 등 여러 예술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특유의 초록빛과 원료 성분에 의한 중독성 때문에 ‘요정’에서 ‘악마의 술’로 강등당한 뒤 금기시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술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 ‘금기’에서 태어난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일일이 그 사례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예술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늘 금지된 장난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깨끗한 유리잔 같은 흰 공간에 압셍트를 가득 따라놓기라도 한 것처럼 초록색 빛을 채워놓은 이유이며, 압셍트라는 공간의 정체성 속에 술이 있는 이유다. 금지된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들에 의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술을 매개로 즐거운 파티를 즐기듯 미디어아트는 물론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 초록빛이 가득한 내부공간은 ‘초록요정’이라는 별칭을 가진 ‘압셍트’를 몸으로 마시는 기분이 든다
 
화가이자 조각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원석 건축가의 설계로 태어난 미디어 바 압셍트는 이 곳에서 벌어지게 될 여러 가지 활동에 최적화돼 있다. 우선은 장르 불문 다양한 예술이 모이게 될 것이다. 회화면 회화, 사진이면 사진, 설치면 설치까지 여러 가지 작품을 오롯이 담을 수 있도록 벽면을 담백하게 비워두었다. 이 벽면은 유영하는 LED 조명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바 사이사이에 설치된 계단은 벽면에 닿아 있어 무의미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바 위쪽으로 섬처럼 떠 있는 공간에 연결된다. 이 작은 공간은 또 하나의 금지된 장난으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원한다면 압셍트로부터 완벽하게 숨을 수도, 활발한 압셍트 내부를 차분한 시선으로 관망할 수도 있는 공간인 것. 
 
↑ 압셍트 내부 전경
 
그리고 소통을 위한 장치도 숨어 있다. 내부의 복도는 한결같이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어깨를 부딪힐 듯 좁은데,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과 사람의 시선을 어쩔 수 없이 교차시킨다. 수줍게 부딪힌 시선 속에서 간단한 인사나 압셍트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혹은 조금 거창하게 예술에 대한 담론까지 무엇이든, 무엇인가가 생성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한원석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바퀴 달린 의자는 압셍트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위트다.
 
↑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양 옆으로 테이블이 놓인 공간과 연결된다
 
 
↑ ‘alcoholic’스러운 테이블과 압셍트의 위트를 보여주는 바퀴 달린 의자
 
압셍트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알면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압셍트의 탄생 배경은 블루닷 아시아(BlueDot Asia 2009), 코리안 아이 문 제너레이션(Korean Eye Moon Generation: Seoul & London), 코리아 투모로우(Korea Tomorrow 2009-2010) 등의 전시를 진행하며 한국 예술을 세계에 프로모션 해온 H Zone의 이대형 디렉터가 미디어 바 압셍트 대표라는 직함을 추가하게 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가 미디어 바라는 독특한 공간을 열게 된 건 미디어아트에 축제라는 흥겨운 개념을 더해 대중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게 하고, 미디어아트 아티스트는 물론 건축, 디자인, 미술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플레이 그라운드를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예술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라면, 혹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비록 금지된 것이라고 해도 압셍트를 통해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압셍트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뿐이에요.”라는 이대형 대표의 설명이 더해지면 압셍트는 금지된 밀실이자 국내 아티스트들의 플랫폼으로 첫 걸음을 디딘 셈이 된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의 큐레이터들에게 아티스트를 추천 받아 전시를 이어 나가는 ‘글로벌 큐레이터 릴레이 쇼’를 기획 중이라고. 압셍트가 어떤 ‘액션’으로 채워지게 될지 기대를 품게 되는 대목이다. 
 
↑ 압셍트 특유의 초록빛을 지우고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 중인 한원석 작가의 <화해 花解 Reconciled>전 전경
 
현재 압셍트에서는 개관기념전으로 5월 17일까지 <천지인 天地人 Heaven Earth Man> 전과 <화해 花解 Reconciled> 전을 진행 중이다. 압셍트라는 공간 자체도 하나의 작품으로 참여하는 이번 전시에는 보무도 당당하게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문득, 예‘술’ 한잔 생각나는 밤이라면 압셍트로 가면 된다. 초록빛 공간 한 잔, 벽마다 걸린 작품 한 잔 하는 사이에 멀게만 느껴지던 아트와 둘도 없는 술친구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사진 유정(燸濪) 객원기자
 
tag.  유정 , 인테리어 , 미디어바 , 정윤희 ,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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