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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09 / 23
총체적 무대의 구축 아래 관객에게 체현되는 목소리, 양혜규의 「죽음에 이르는 병」
       



무대의 다원예술적 전이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소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설치작가 양혜규가 각색‧연출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간 국내에서 벌어졌던 무대예술과는 상이한 질서의 문법들을 구축해가며 다른 차원의 시선에서 무대를 재편하는 측면이 크다. 무대라는 것이 스펙터클한 환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세트적 표상으로 놓이거나(가령 호두까기 인형에서 극의 전환에서 커튼을 걷고 드러나는 고전적 화려함의 재현이 일시적으로 경이의 순간을 자아내는 시간 안에서) 극적 환영의 일부로 녹아드는 방식에서 무대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표피적인 측면을 장식하며 그것 자체를 표상하지 않는 투명한 플랫폼으로 작품 속에 작용하게 되는 것과는 이 작품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한참동안 꺼지지 않는 조명 아래 은근한 어둠과 적막 속에 프로젝터 내지는 조명의 장치가 준비되며 예열되는 소리, 마치 극장 전체가 하나의 부여된 시선이 어둠의 시간(그 이전의 일상의 시간임을 수여하며)으로 침잠하는 신체적 반응을 동반하는 터널 효과를 준다. 이제 무대를 감싼 어둠이라는 하나의 시공간 안에 우리는 있고, 여타 무대 안으로 봉합되며 사라지던 온갖 기계 장치들은 일상의 사물 차원에서 내지는 그 자체로 존재 양식을 띠며 존재하게 된다.
 
보통 첫 암전이 되는 것이 무대예술에서 공연을 시작하고 극적 환영에 젖어들어야 하는 시간을 행사하겠다는 모종의 관습적 통례로 작동하는 것과 달리 이 공연은 그 암전을 오래 끎으로써 그 시간 자체를 하나의 극적인 시선으로 통일시켜 실재로 환영을 안긴다.암전이 되면 목소리는 특정한 신체를 벗어나 무대를 뒤덮는다. 이는 정확히 무대 천장 쪽에 임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로 영화의 외화면 내 구성되는 가늠할 수 없는 신체의 발화된 목소리로 무대를 곧 신체화 시킨다.

관객에 체현되는 목소리
 
목소리는 이인칭의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내면에 잠재상태로 있는 이성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며 두 남녀의 관계에서 남자의 이미지 표상이나 감정적 측면이 혼재된 것과는 다른 인식의 차원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는 확정적으로 주어지며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 전개 양상을 띠지만, 현실 차원의 표상과 현상‧이야기 대신 대화로 짐작되는 바들은 곧 존재가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관객에게는 일종의 내러티브적 기능에 소구되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인식의 차원은 관객의 내면에 조각되는 바가 크다.
유정아 아나운서가 무대에 등장하지만 온전히 그녀에게 목소리가 임재하는 곧 목소리와 신체가 하나의 특정한 지점에서 하나의 존재를 드러내며 거기서부터 무대라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을 획정하는 순간은 짧다. 곧 마이크를 통한 발화로 인해 공간 자체에서 퍼져 나가는 식으로 제시되어 가령 중간 중간 그녀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지는 순간은 미약하며 그 부분은 또한 다분히 의도적인 바가 있다. 아나운서를 무대에 차용한 것은 존재에 앞서는 목소리를 가진 특별한 존재, 곧 목소리 자체로 존재를 소거하고 존재 자체가 망각되는 존재가 아나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그녀는 양혜규의 대리자로 존재하며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일부분은 그 현실 안의 동작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존재를 감싸는 존재자의 불명확한 매체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대리주체이자 다양한 주체로 (아나운서로서) 그녀 자신을 이미 벗어나고, ‘그녀’(역할) 바깥에서 존재하고, 다시 (역할로서) 자신의 목소리로 위치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양혜규 그녀 자신으로 위치하기도 한다. 사실상 그녀의 액팅은 내면 자체가 흘러나오는 발화일 때 곧 ‘그녀’라는 존재가 무대에 특정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 외에 대본을 들고 대본 읽기라는 방식으로 현재화되고 있다. 이는 이미 주어진 대본 안에서 주체는 여전히 사유 차원으로 흐르며 존재화되지 않고, 한편으로 확정되지 않은 시공간의 한 타자의 이야기로 남겨 있는데, 이를 고스란히 다시 환영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마치 환영화되어 실재가 되는 일반적인 무대의 방식이 환영의 대리자를 지정하고 동시에 소거하며 메타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입히는 읽기의 방식을 통해 ‘읽고 있음의 실재’로서 자신을 발현시킴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마지막에 유일하게 조명이 켜지고 곧 환영의 전체가 끝난 상태에서 그 바깥에서 이 극을 메타적으로 아우른다. 유정아의 목소리는 여기서 양혜규를 직접적으로 대리하며 작품의 의도 작품에 대한 철학을 천명한다. 연기는 곧 대본 이외의 다른 곳에서 결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이는 곧 환영으로서 무대 내 실재가 실은 이미 주어진 것의 정전(正典)을 수여함이라는 사실을 사실상 무대라는 현재 안의 몰입으로 봉합하여 지우고 있음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극적 환영, 극적 환경을 모두 새롭게 사유하며 그것을 통해 극을 만들고 있음에서 이 작품이 성립함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이로써 유정아가 굳이 외우는 대신 대본을 들고 읽었던 것, 그리고 마지막에 역시 환영이 사라진 대본을 읽는 것까지 일관된 양식을 통일하며 환영에 대한 일점의 의구심을 의도 차원으로 격상시키며 해소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서 소인(素因)
 
단지 흘러가는 인식 차원에서의 목소리들에서 남자의 여자에 관한 인식, 여자가 남자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일종의 화두를 제시하는 것 등의 여러 질문 차원에서의 이야기들의 측면에서 고찰되는 둘의 관계 역시 흥미롭다.직접적인 관계 맺음은 오로지 섹스와 대화로 드러나지만 하버마스적 완전한 소통의 측면을 전제하지 않는 이상, 남자의 입장에서 그의 입장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안에서 관계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보다는 관계 이후 사유의 온전한 개인에게로의 수여의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곧 내 신체를 휘감고 도는 절대 타자는 풀 수 없지만 풀어야 하는 의구심과 신비함, 그 자체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기호이다. 이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고 그녀가 눈을 뜰 때와 또 감을 때, 곧 무방비적 상태에 있을 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독해가 가능하다. 

그녀의 신체는 단지 바라보는, 또는 닿을 수 없는, 그렇지만 그녀에서부터 확대되어 자신을 감싸고 있는 하나의 환경으로 놓이며 그녀로써 매개된 자신의 의식을 점검하는 유유한 바다를 흘러갈 때, 그녀가 잠을 잘 때, 곧 그녀가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열어주는 풍성한 ‘샘’이 되는 동시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 된다. 반면 그녀가 말을 할 때 그의 의식은 그녀에게 점검당하며 은폐되지 못할 뿐더러 그녀로부터 유래된 의식의 ‘바다’를 결코 형성하지 못한다. 자신을 가로막는 그녀를 표상할 수 없는 곧 이전의 표상하던 그녀를 지우며 혼란의 상태에 놓이게 하는 시간 차원에서, 그녀의 말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유유한 사유 체계가 작동되지 않는) 자신에게 있어 그녀는 또 타자가 된다. 곧 어쨌거나 그는 그녀 안에 자신을 상상할 수 있더라도 그녀에게 도달할 수 없고, 그녀가 앞에 놓여 자신을 상대할 때도, 또한 자신에게 모든 것(귀를 비롯한 시선, 신경의 모든 체계)을 기울인 주체로서 거듭나 있을 때 역시 그녀를 소유할 수도 범접할 수도 없다.
 
그녀와의 섹스에서 그는 그녀의 자궁 안으로 젖어들지만, 이는 심연으로 들어가며 역시 하나의 존재 차원이 아닌 특정한 공간 차원으로, 또 그녀라는 의식을 안는 또 하나의 자신으로 들어갈 뿐인 것이다.죽음에 이르는 병으로서 그녀라는 존재와 마주한 건 이런 총체적인 그의 낙원과도 같은 난국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된다. 곧 짐작할 수 없는 시공간의 터널 안에 놓이며 풀 수 없는 인식의 과제들이 수여되는 것. 여자는 사랑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남자의 경험을 일깨우는데, 이는 곧 사실 차원의 검증이 되지 못한 채(남자의 이전 경험들은 극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그에게 있어 절대 과제가 됐음의 사실을 남자의 내면 안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과 같다.
 
 
 
총체적 무대의 환경 : 회화와 영상, 설치, 조명
 
그녀의 신체를 덮는 황금색 옷은 그녀 피부의 확장이고 피부는 표현 그 자체를 완성시키며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상정되며 영상의 바다로 환치된다. 남자가 사유하는 여성의 신체, 죽음의 신체는 빛의 이미지로 일렁이는 황금색 물결의 옷과 피부(를 담은 스크린)로 현현된다. 곧 유동하되 정지되어 있는 듯한 스크린 안 표면은 하나의 회화로서 자리하며 섬광처럼 표상되는 데 비해 그 스크린으로 투사되던 천장에 매달린 구조물이 돌아가며 다시 빛과 어둠의 배합을 이르키는 어두운 빛의 영상의 투사로 알 수 없는 공간의 심연으로서(내지는 남성이 존재를 파묻던 여성의 자궁과도 은유 체계로 작동함), 삼차원의 공간으로 재출현하는 변환의 지점을 안긴다. 그리고 관객을 향해 쬐는 조명의 빛은 그와 강한 대비를 동시적으로 이루며 그녀에의 그의 시선을 이른바 우리의 육체로 옮겨 놓고 있다. 한편으로 임재하는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조명은 관객석부터 무대 전체를 훑고 조명기구들을 비롯한 그 장치들을 존재 차원으로 드러내며 무대로 옮겨진다. 이로써 무대 극장 전반의 환경(곧 건축적 구조까지 확장되는)이 하나의 무대로 확장되는 경험을 안기는 가운데 극의 맥락과 묘하게 결합하게 된다.또한 조명은 계단 위를 천천히 오르던 유정아의 행위 이후 그녀의 직접적인 출현을 배제하고 조명만으로 같은 속도의 시간으로 비추어 올라감으로써 존재의 자취를 만들고, 하나의 핀조명이 하나의 존재를 나타내고 이어 교차되며 출현하는 또 하나의 핀조명으로 남녀의 관계를 상정시키기도 한다.극 중간 무대에 놓인 선풍기는 관객석 뒤쪽까지 그 바람을 전달하며 바다를 환유한다. 곧 사유적인 측면의 목소리, 신체적으로 다가오는 오브제와 무대 환경 전반은 ‘제 4의 벽’ 대신 내면을 파고드는 여성에의 이성과 감각의 총체를 특정한 한 남자의 내면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을 그 하나의 존재로서 현재적으로 획정시키는 과정들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조명을 포함한 총체적 무대 환경의 구축 아래 장치를 포함한 각종 오브제가 존재화되어 출현하며 유기적인 심상과 신체의 반응 현상을 초래하는 흥미로운 지점을 선사한다. 이 안에서 그림과 영상, 존재화되는 오브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닌 역할이 되는 목소리 모두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곧 단순한 복합이 아닌 총체적 예술, 융합적 장으로서, 하나의 다원예술의 예시로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글: 김민관(공연 대본작가) | 사진: 페스티벌 장 | 진행: 이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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