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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09 / 10
INVISIBLE JOURNEY : 보이지 않는 여행 - 무대에서 춤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적 작업의 구현
       

 
심연과 침묵, 어둠 속에 인기척으로 서로를 마주치고 스쳐간다. 존재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감각할 뿐이다.
 
무용가와 무용가의 교류,
무용가와 음악가의 교류,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
 
 
이 공연은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창작을 시작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실마리가 ‘공(空)’이다. 즉, 공이라는 환경을 직조하며, 이를 통해 몸의 리듬을 생성하고 되찾아간다. 이는 문화적 체화의 편린들을 거슬러 횡단하고 만나며 자신을 자각하는 하나의 노정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들은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하기 전 어둠에 직면하며 언어와 인종적 상이함의 특성을 거두고 매개된 바 없이 서로를 더듬어 가는 조건을 만든다. 교류와 접합의 과정적 접근은 무대 위에서 내용(contents)을 구성하게 된다. 우발적으로 생성된 바는 시간의 궤적에 얹혀 육화되어진다. 무대는 구성적으로 이뤄지며 창작의 단서는 그런 몇 가지 창작의 조건을 만듦에서 출현하게 된다.
 
 
무대 하수(관객 좌측 편)에는 천장에 달린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모래가 공연 내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바닥을 쓸어내리며 명상적 효과를 부여한다. 조명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바닥에서 아스라이 출현한다. 흰 옷을 입고 등장한 셀린 바케(Celine Bacque)는 흰 종이를 놓고 감으로써 빛과 문명, 영토를 모두 부여한다. 여기에 흰색의 기표로 한국의 문화를 정초함도 함께 이뤄진다. 그 위에서 모에케치 코에나(Moeketsi Koena)는 움직임에 따라 흰 종이의 찢어지고 소멸되는 운명을 체현한다. 유령은 형체가 지워진 상태에서 얼굴이 비치며 등장한다. 이는 영화 「사이코」의 보이지 않는, 엄습하는 시선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들리지 않게 새어나오는 소리에 “어디니?”가 들린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가운데서 명확치 않지만 소리가 있음을 상정하는 불투명한 정보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다음은 한국이 가진 몇몇 기표들을 전용해 문화적 누층을 헤집어 보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빛 대신 소리의 출현, 곧 고유한 국악기 리듬은 투박한 가비 사하누피(Gaby Saranouffi)의 몸을 달군다. 꿈틀거리고 꾸무럭거리며 격렬한 파장에 그는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음악은 새롭게 전유되고 새로운 움직임이 소리를 입고 움튼다. 이러한 움직임은 끊임없이 음악에서 미끄러지고 리듬에 맞아떨어지는 일순간에 다시 떨어지는, 접합과 하강 사이에서 상당히 고전하는 모습이다.

낯선 듯 친숙한 움직임에서 어느덧 타자를 발견하고, 타자를 통해 문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그것을 진단하게 된다. 이로써 음악은 어떤 문화에서 몸과 함께 출현하며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이미 몸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그 움직임을 함께 떠올리고 감각하며 듣게 된다. 반면 음악에서 움직임이 미끄러지는 순간 문화적 표피를 벗겨내며 관성화된 문화의 인식을 떨어뜨리어낸다. 이는 그 스스로가 생소하게 음악에 반응하며 적응하려 함에서 풀풀 뿜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하얀 천이 길게 무대에 드러나고 이는 삶의 노정을 상징한다. 살포시 바닥을 뒤덮는 부드러운 비단, 곧 동서양 문화적 교류의 경로가 됐던 비단길(실크로드)을 상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은 생성의 끊임없는 과정에서 얻는 결과물로 치환되는 대신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신체를 혼란스레 가동시키는 땀방울, 점프할 수 없는 시간의 누적이란 현실을 알려줄 뿐이다. 천의 무늬는 춤의 무늬로 이어짐은 또 하나의 문화적 진단이다.
 
셀린 바케는 붉은 옷을 입고 살풀이를 감행한다. 이는 플라멩코의 강렬한 발산의 기표를 내뿜는다. 깊은 침잠의 기운 대신 태양의 강한 내리쬠에서 붉은 노을로의 점층적 변화, 성화 주자의 기념비적 순간 등 그녀의 춤은 탈문맥적 맥락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문화적 누층의 또 다른 비밀이 숨어져 있다. 그녀의 에너지는 혼란스런 광경에서 헤매며 엔트로피로 복잡해지다 명멸하는 수순을 밟아나간다. 김봉호는 찬찬히 음악이 내리쬠을 받아들이고 있다. 과감히 나서지 않고 그것을 전유하는 방식은 또 하나의 공의 조건을 만든다. 이미 음악이 주는 선선하고 가녀린 섬섬옥수의 살풀이와 같은 움직임을 인식하기에 춤은 다른 방식으로 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의 춤은 아프리카의 탄력 있는 몸짓을 체화한다.
 
 
이어서 공연은 또 다른 조건이 놓인다. ‘제 4의 벽(객석을 향해 상정된 가상의 벽)’을 허물고 한 판 놀아보자는 마당극의 포석을 까는 것이 그렇고, 신하교의 꽹과리 이봉교의 장구가 무대에 덩그러니 놓이는 것이 그렇다. 이는 예고 없이 우발적으로 떨어뜨려진다. 소리는 어기적대며 느리게 꽹과리를 치다 더딘 속도로 커진다. 이 커다란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됨은 오로지 그 경쾌함을 적막에 울리는 더딘 숨 고르기에서 빠르게 조여 오며 분사되는 연주 안에 시간을 능수능란하게 분배하며 리듬을 조율하여 관객을 끌어당기고 동화되게 하는 연주 방식에 있다. 사물놀이 안 악기들을 자유로이 전유하는 가운데 꽹과리가 풍악의 잦고 청량히 다가온다면 징은 은은하게 공명하고 장구는 귀에 꽂히는 둔중한 마찰이 인다.
 
마지막 조건은 TV이다. 사운드가 직조하는 무대가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들리기 시작한 모레 소리는 돌연 모에케치가 TV를 안고 오며 지지직거리는, 채널이 나오지 않을 때 불투명한 네거티브 화면의 소음이 계속해서 이어짐으로 치환된다. 하나의 조건, 곧 마치 모래시계의 환치로도 볼 수 있는 모레 사운드는 실재의 자취에서 뇌를 세욕(洗浴)시키는 파도 소리의 거센 사운드로 치환된다. 아울러 그 TV 모자이크 점들이 이루는 우주적 세계에 섬광들이 인다. 처음과 끝은 같고 무대를 뒤덮는 미디어는 달라진다. 불투명한 자장은 들어갈 수 없고 들여다볼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그 안에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미 느낄 수 없는 자연이라는 환경의 미디어 내지는 시간의 조건은 미디어 환경으로 바뀌고, 이는 다시 감각할 수 없는 조건으로 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파열되어 발산하는 사운드에서 파생하는 춤은 하나의 물음이다. 곧 마지막은 또 다른 환경에서의 춤을 보이는 대신 그 소리 안에 머물러 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미래적 조건임을 인지하면서.
 
국제 교류 차원에서의 만남은 투박한 질감과 단순하게 놓이는 조건들의 부여, 타문화의 전유와 문화적 심층이 새어나오며 미끄러지는 기호들, 미디어 환경의 역설, 청각을 강조한 어둠에서의 감각의 전이와 사운드가 채우는 무대 등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낯선 것의 친숙함으로의 회귀가 일으키는 언캐니한 만남과 충돌의 조건들을 무대에 가감 없이 놓아둠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다.
 
글: 김민관(공연 대본작가) | 사진: 현미라 | 진행: 이경택 기자
 
tag.  아트 , 웹진 , 보이지 않는 여행 , 무용 , 퍼포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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